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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투리 철학

시간의 이해01: 시공 Time to Space

by 시하의 여름 일기 2020. 9. 15.

 

인간은 삶의 많은 시간을 공간으로 만드는데 소모한다.

그 공간을 넓혀가는 것이 인생이다고 말해도 가히 틀린 말은 아니다. 지난 한 달 동안 뒤 뜰에 있는 오래된 나무 정자 Gazebo에 벌레 (termites) 먹은 서까래(rafter) 가 있어 이를 교체하면서 내친김에 문도 만들어 달고 나무를 사서 창도 만들었다. 밤이 되면 좀 추울 수 있기에 Wood Stove 도 사서 설치했다. 드디어 ....와...나만의 공간이 생겼다. 기쁘다.

코로나 땜에 옹기종기 모여 살다 보니, 다 큰 아들놈 셋이 방이며 서재며 다 차지해 버려 어디 작업할 공간이 없었는데, 학교며 도서관도 코로나로 문을 닫고 갈 곳이 없는데, 드디어 만들었다. 나만의 공간을. 기쁨도 잠시다.

 

나만의 공간이라 생각은 내 생각일 뿐이다. 강아지와 고양이가 벌써 차지해버렸다.

이놈들 집도 만들어줘야 하나. 나의 공간을 내어줘야 하나.

이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놈들에게는 모든 것이 제것이다.

 

나의 공간 안에 있음은 곧 나의 삶의 일부다.

그래서 나의 공간 속에는 항상 이 놈들이 있다

공간을 만들어 가는 것은 살아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그래서...

영생을 가졌다는 말은 무한한 공간을 가졌다는 말과도 같은 것인가?

아니면 단지 인간이 흙으로 지어졌기에 땅에 집착하고 세상에 집착하는 것일까?

이 집착에서 벗어남에 불가에서는 죽음을 기독교에서는 거듭남을 도道로 제시한다.

 

그래서 모든 종교는 죽음 앞에서 진지하고 겸허하다.

그 누구의 죽음이든 그 앞에 진지해야 한다.

죽음 앞의 시간은 인간 자신을 반추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죽음은 공간을 다시 시간으로 환원할 수 있는 자리다.

 

죽음을 이기려면 죽음을 알아야 한다.

죽음은 생명에게 주어진 시간의 끝이며 시작이다.

끝에서 생명이 시작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의 이치다.

겨울 끝자락에서 봄이 시작되듯

모든 생명은 끝에서 새로운 시작이 일어난다.

죽음이 끝이라면 그 자리는 새로운 시작점일 수 있다.

 

그 끝점 그 새로운 시작이 어디로 향할지 모르기에 두려울 뿐이다.

그 끝에 무서운 악마가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지옥문이 열려 있을 수 있다.

지옥문 앞에서 고민하는 인간은 어쩌면 이미 늦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점이 시작점이 아니라 끝점이라면 그 고민은 가치가 있을 수 있다.

다시 나의 공간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끝에서 서있는 내가 불쌍하지 않는가?

내가 나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은

나도 잔인한 세상의 일부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자 새 출발을 하기전 먼저 낭만 고양이와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시간 여행을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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