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 감각의 경계
아름다운 사랑의 슬픔은 메마른 마음에 감성의 진주를 영글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를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디오니소스 제전에 있는 비극을 관람할 때 감정의 절정이 가져다주는 마음의 상태를 카타르시스Katharsis 했다. 이 카타르시스는 억압된 이성의 구속에서 순간적으로 벗어나는 디오니소스적인 체험이라고 설명하기도 하다. 비극에 담긴 애절함이 관객의 마음속에 쌓인 불안과 우울, 긴장을 풀어버리고 인간의 영혼을 고양하기 때문이다. 감정이 정화되고 아름다운 감성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카타르시스적인 슬픔이라는 감정에는 이러한 치유 능력이 있다는 말과 같다.
연극은 이야기를 통해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목적에 앞서 문자가 전할 수 없는 한계를 넘어 대사와 몸짓 그리고 노래와 음악을 통해 감정과 감동을 전달할 수 있는 수단으로 발전되어 왔다. 영화는 이와 같은 연극의 기능과 본성을 바탕으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것이다. 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들 수 있는 촬영과 편집기술은 연극이 갖는 내면 치유의 능력 그 이상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최근에 긍정의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이라는 이름으로 현대 심리학에서 긍정의 감정을 다루기 시작했지만 아직 감정과 감성을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 할지 명확한 가이드가 없이 발전 중에 있다. 다행히 한국과 같은 극동 아시아에는 동양의 정신문화의 유산으로 성리학과 같은 동양 심학에 감정에 관한 많은 지적 유산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마음에 대해서 특히 감정과 이성의 관계를 설명하고 특히 감정과 감성을 중심으로 마음의 원리를 설명한 학문적 유산을 발전시켜왔다. 이 책에는 현대 서구인 세계관 안에서 동양 심학의 원리를 현대적 입장에서 활용하고자 한다. 그리고 문화심리학에 근거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권에서 생성된 마음의 원리가 우리의 마음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에티카 같은 서구 철학과 심리학에는 48개의 감정의 다양한 분류를 한다. 다양한 감정의 분류는 감정의 변화와 차이를 이해하기에는 좋지만, 실제 적용하고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그에 따른 연구자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동양 심학은 다양한 감정의 원천과 근본적인 감정의 핵과 같은 단초를 찾고자 했기 때문에 단순하지만 적용성에서 더 탁월한다. 이 관점에서 동양 심학에 따라 7가지의 기본 감정과 4가지의 긍정의 감성을 이해하고 설명을 영화를 통해 설명하고 적용하겠다.
그리고 한국 영화를 통해서 볼 수 있는 아시아인 특히, 한국인의 정서를 살펴본다. 끝으로 동양 심학에 따라 4가지의 긍정적인 감성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대중 흥행한 영화를 제시하고 이를 통해 영화를 통한 감성치유를 위한 자료로 제안한다. 규형 잡히지 못한 마음을 가진 개인만 아니라 사회의 감성을 회복하고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동양 문화와 동양인의 마음
마음의 작용에는 쉽게 두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하는 마음인 ‘이성의 작용’과 몸과 마음이 함께 작동하는 마음의 느낌’이다. 마음의 느낌은 단순한 듯하지만, 사실, 추리와 논리적 사고를 주로 하는 이성의 작동 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표현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기능상 구분으로 감정感情, 감성感性, 그리고 감각感覺으로 세가지로 구분한다.
감정feelings은 마음의 정서적인 느낌이라는 뜻으로 영어로 이모션 Emotions로 표현한다. 그리고 감성은 정서가 함양되어 있는 직관적인 느낌의 개념으로 Sensibility로 내면적이고 도덕적 감각을 의미한다. 감각 sensitivity은 신체기관 즉 오감을 통해 느껴지는 통증이나 쾌감과 같은 신체적인 느낌을 통해 느끼는 것을 뜻하는 감각 sense라고 일반적으로 번역한다.
하지만 한자의 표현을 사용한 아시아인의 마음에 대한 정의로서 감정, 감성, 감각의 뜻과 의미는 조금 다르다. 비록 영어식으로 번역된 개념이 일반적으로 통용되지만, 감각sensitivity를 제외하고는 동양심리학은 감정과 감성을 마음의 작동 원리의 측면에서 서양 심리학과는 차이가 있다. 이 이후로 동양 심리학을 심학心學으로 통칭한다.
동양 심학과 서양 심리학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잘 알다시피 언어의 차이는 문화의 차이만이 아니라 생각의 차이다. 그래서 용어의 개념은 많은 점을 시사하고 함축하고 있다. 또한 그러한 숨은 개념의 차이가 그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에 그리고 무의식에 영향을 준다.
인간의 사회적 본성에 근거해서 “사람의 마음은 문화적이다.”는 문화 인류학자와 주장은 심리학적인 입장에서도 동의할 수밖에 없다. 사회 심리학자 에릭 프롬 Erich Fromm이나 러시아 문화심리학이자 비고스키 Vygotsky는 사람의 마음은 사회 환경에 의해 조성된다고 믿는다. 이 문화 심리 이론은 나아가 사회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마음이 문화와 환경 속에 깔려 있는 문화적 교육과정 Hidden Curriculum을 통해서 인지적 유전 요소로 전해진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가에 따라 우리의 마음의 성향과 성품이 차이가 형성된다는 뜻이다. 프롬은 주로 역사적 관점에서 봉건제도 시대의 사람들과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의 차이가 있는 이유도 문화적인 구조와 사회라는 시스템 차이에 따른 것으로 설명했다. 인간은 타고난 본성과 능력으로 자연환경이든 사회적 정신적 환경이든 각각의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그렇게 변화 발전시켜가는 것이다. 이를 간단히 다시 정의하면 “문화는“문화는 인간의 마음이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문화는 곧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것들이 현실화된 것이다. 문화적 접촉을 통해서 인간은 그 문화에 담긴 마음과 심리까지 전달하고 또는 그 마음에 적응해 가는, 즉 닮아가고 마음을 빚어감을 뜻한다.
타고난 본질적인 인간 본성에 근거한 마음과 심리는 인간이라는 보편적 속성에 기인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유사하다. 하지만 외부와 타자와의 관계성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본성에서 기인한 심리나 심리적 반응은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것이 일반 문화심리학자들의 보편적인 견해다. 이 문화심리학적인 전제에서 아시아에 사는 사람은 아시아인의 마음과 문화적 틀에 의해 만들어진 마음과 서구적 환경에서 만들어진 인식의 틀이 다를 수 있고 그에 대한 반응과 가치판단도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화적 구조와 환경이 인식의 채널과 틀이 된다.
사람의 인식과정은 모두 동일해도, 각 사람이 인식하는 환경과 사회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원형의 실체를 다르게 해석하거나 왜곡해서 받아들일 수 있다. 왜곡된 인식은 인식한 실체를 근거로 해석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 그리고 새로운 가치는 삶의 현실에서 실체가 된다. 그리고 인간은 그 해석된 실재實在에 살아간다. 그 해석된 실재가 바로 문화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는 곳에 따라 그 삶의 방식에 따라 인식 대상이 형태적으로 모양과 성질이 같다고 해도 그것이 뜻하는 바와 이해하는 바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예로 흑과 백이 빛과 그림자, 선과 악을 상징할 수 있다고 모든 곳에서 검은색이 블랙리스트와 같이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색으로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검은색 세단차와 같이 고급스러운 관료적인 의미로 전달될 수도 있다. 특히, 피부색이 검은색인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검은색의 의미가 부정적일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쉽게 예측 가능하다.
감각, 감정, 감성의 개념은 이러한 문화심리학적인 변화에 대한 중요한 출발점이며 수천 년간 동양에서 발견하고 나누고 공유해 왔던 중요한 개념을 전달해 준다. 인간의 마음에 대한 한국인들의 생각과 마음에 공유되어온 개념과 의미를 통해 감각과 감정, 감성을 각각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감각感覺
감각은 인간의 마음에 담긴 느낌이라는 기능이다. 시각, 촉각, 미각 같이 신체의 오감을 통해서 외부의 자극을 해석한다. 감각은 본질적으로 생리적인 반응에 따라 판단한다. 아픔, 고통, 즐거움, 쾌감,. 감각은 고통을 지양하고 행복을 추구하고 인간의 본능과 본성에 충실한 마음의 작용이다. 물리적 원인과 마음의 반응으로 감각은 인과 관계가 명확하다. 감각에 있어 자극에 대한 반응이 다르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만일 뜨거운 온도가 고통스럽지 않다면 감각기관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불쾌함 등이 바로 외부 자극에 충실한 감각의 반응이며 해석이다. 감정은 감각의 해석적인 느낌이라면, 감각은 보다 생물학적인 감각기관에 충실한 객관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인간이 감각 기관을 통해서 느끼는 아픔과 고통은 신이 인간에게 안전장치로 준 선물이다. 예로, 한센병에 걸린 사람에게 나타나는 하나의 증상은 통증이 사라지는 것이다. 뜨거운 불에 데어도 아픔을 느끼지 못해 아이가 울지 않아 화상을 입는 경우가 어린 환자들에게 종종 있다고 한다. 감각을 잃어버리는 것, 감각이 둔해지는 것은 생명력을 잃어가는 하나의 증상이다. 이것이 감각의 정의와 특징이다.
감각에 대한 정의와 이해는 서구적인 관점이나 표현이 동양의 관점과 표현과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감각은 외부의 자극에 대한 몸의 반응을 마음으로 느끼는 것을 뜻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비록 앞에서 감정과 감각을 다르게 분류하지만, 감각과 감정은 서로 긴밀하게 상호작용을 한다는 사실이다. 만일 고혹적인 여성의 누드 사진을 본다면 건강한 남성이라면 적어도 순간적이나마 성적인 충동을 받는다. 시각이 마음을 자극한 것이다. 소리도, 촉각도 마찬가지다. 감각은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감정은 감각을 왜곡하기도 한다.
예로, 일반적으로 고통스러운 감각은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즐거운 감정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한 겨울 약간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반신욕을 하는 할아버지는 약간 뜨거운 온도에 행복을 느낀다. 나이가 들면서 무디어진 감각과 식어져 가는 체온을 올려주기에 몸의 피로가 풀려나오면서 “아~시원하다”는 말하곤 한다. 할아버지와 함께 욕탕에 따라 들어간 나이 어린 손주에게는 결코 그 경험이 시원할 수 없다. 아마도 아이는 온탕을 좋아하는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이에게는 할아버지의 개인적인 감정이 보편적인 감각의 반응을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각이 상대적이 되고 개별적으로 왜곡된다. 온도와 같이 물리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는 자극도 감각이 될 때 느끼고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감각도 이렇게 상대적 인대 감정은 보다 더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음을 예측할 수 있다. 정서적으로 우리는 이러한 하나의 가정도 가능하다. “노인과 아이의 행복 온도는 다르다.”
감정感情
감정은 인간이 가지는 여러 종류의 마음의 느낌의 표현을 말한다. 감각이 외부작극에 대한 감각 기관의 반응에 따른 마음의 표현이라면, 감정은 직접적인 외부 자극에 의한 감각기관의 반응만이 아니라 외부의 사람과 사물 타자와의 사회적 관계에서 일어나는 지속적인 관계 중심의 마음의 해석과 반응이다. 때론 직접적인 자극이나 관계가 아니어도 마음의 해석에 따른 마음의 느낌일 수도 있다. 똑 같은 외부의 자극일지라도 그 자극을 즐거움으로 해석할 때 느껴지는 감각과 불쾌감으로 해석하는 순간 느껴지는 감각이 다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은 다른 느낌은 감각이 아니라 감정이라고 한다. 자극과 느낌 사이에 마음의 해석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해석이 작동하는 감정은 외부 자극에 의한 마음의 객관적인 느낌이 아니라 해석자의 주관적이어서 더욱 다양해진다. 문화적인 가치와 편견에 따라 해석도 달라짐으로 감정의 종류에 대한 다양한 표현을 가진다. 17세기 서양 철학자 스피노자는 그의 책 <에티카>에서 사람의 감정을 48가지로 분류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한 감정으로 분류된 감정은 이성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한 감정이다. 즉, 이성의 통제나 해석에 따라 변화되는 감정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감정은 상상이나 암시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감정이 그렇지는 않다. 경험적으로도 그리고 동양 심학에는 이성이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이 분명히 존재함을 정의한다. 그리고 현대 심리학에서 과학적 접근으로 받아드려 진 것은 최근이다. 서양 심리학에서는 그전까지 감각은 독자적인 생리적인 반응이고 그에 따른 느낌이다고 정의한다. 그래서 감각과 달리 감정은 이성이 주관하는 마음의 한 기능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감정을 이성이 학습된 가치와 개념에 따라 주관적으로 해석된 마음의 반응과 표현으로 생각한다. 동양 심학에서도 마음의 느낌을 이성에 의해서 조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특히, 불교의 심리학은 모든 감정은 마음에 종속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동양의 심학은 비록 마음의 의지나 생각에 따라 감정이 리理부르는 마음에 종속되지만 그 이전에 감정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라고 본다.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성리학에서는 감정에 대한 입장이 두 가지다. 하나는 감정은 독자적인 마음의 느낌이다. 그러지만 그 실체는 이성이라 부를 수 있는 리理인 마음에서부터 감정이 나왔다는 입장이다. 다른 하나는 오감에 의해 마음과 독립적인 몸에서부터 파생되었다고 보는 입장이다. 감정이 이성의 해석에 따라 여러 모습과 종류로 이해되고 표현되고 변화될 수 있지만, 해석과 변화의 기초가 되는 감정은 독자적인 형태로 처음부터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에 대한 이해의 발전 단계가 동양이나 서양이 유사하게 발전해 왔다. 관념적인 관점에서 체험적인 관점을 더 중요시하는 것이다. 해석이 아니라 현상과 사실을 더 중요하는 사상이 주도하게 되었다. 현대 심리학 모두 감정의 이해의 발전 방향이 유사하다. 결과적으로는 해석적인 이성중심의 마음의 이해에서 실체를 보고 느끼는 것 만을 사실로 인정하게 되었다. 결국 동양이나 서양 심리학 모두 감정의 독립성을 인정하는 결론에 이른다.
독자적인 감정의 종류도 문화적인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다르게 표현되고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오늘날 심리 전문가들은 행복, 슬픔, 분노, 혐오, 두려움 과 놀라움 정도로 여섯 가지로 감정을 분류하곤 한다.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성리학에 담긴 심학에서는 일곱 종류의 감정으로 분류해 왔다. 이 일곱 가지의 감정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하는 감정으로 인정人情이라고도 부른다. 사람이 ‘인정人情이 있다’ 또는 ‘인정이 없다’ 라는 표현도 사실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한국인은 정情이 많은 민족으로 생각되어 왔다. 이 사실은 과거 한국인들은 감정에 대한 생각을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학습해 왔음의 결과를 보여주는 한 흔적이다.
감정이 중요한 이유는 행동에 대한 가치 판단은 이성이 하지만, 행동을 하게 하도록 자극하는 심리적 동기와 에너지는 감정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때론 절제되지 못한 감정이 부적합한 반응을 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감정에서 나오는 과다한 충동이 이성이 간섭하기 전해 작동해버렸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이유는 몰라도 우리는 경험으로 이사실을 알고 있었다. 옛 선조들은 감정은 야생마와 같아 잘 다루지 않으면 악마처럼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사실 감정의 강약의 정도의 조절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적절한 상황에 적합한 감정적인 반응을 해야 하는데 사람이 그렇지 못할 때이다. 이것을 마음의 병이라고도 하고 성경은 이것을 악한 세대의 징조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또 이르시되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성경, 누가복음7:31-32).”
오늘날 동기와 원인을 쉽게 찾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사건 사고들이 종종 있다. 그 사건과 문제들 가운데 사이코페스나 소시오 페스 같은 인격장애 때문에 일어나는 범죄와 문제들인 경우가 종종 있다. 이와 같은 범죄의 특징이 범죄자들이 이유나 원인과 목적을 가지고 범죄 한 것이 아니라 인격장애에 따른 돌발적인 사고라는 것이다. 이 인격장애가 바로 동양 심리학의 입장에서 바로 인정人情이 결핍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인간의 무자비함은 인정의 결핍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감정들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의 행동 장애의 하나로 설명한다. 지식과 정보가 과다하게 생산됨에 따라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지식사회에서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많은 공부와 학습을 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마음을 잃어버린 시대가 되었다. 기르는 닭이나 개를 잃어버렸다면 찾아 나서지만 사람들은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 나서지 않는다는 맹자의 말과 같이 되었다. 바쁜 삶에 쫓기는 모습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이 평범한 인간의 모습인 것 같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오늘날 사람들은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노력을 해왔다. 그래서 많은 지식과 기술로 그 길을 많이 찾아내고 있다. 잃어버린 마음, 그 가운데 특히 감정을 이해하고 찾기 위해 인문학은 오랜 세월을 통해 연구를 해왔다. 현대 정신과학과 현대 심리학에서는 겨우 최근에 감정을 별도로 주목하기 시작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현대 심리학 보다 앞서 한국 성리학에서는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 선생의 마음에 대한 연구 기록과 저서들이 많다. 선조들이 연구한 한국의 성리학은 한국 심리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한다. 이것을 우리는 형이상학적인 철학적인 원리로서 취급하고 심리학적 가치를 간과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점에 착안해서이 블로그( 책으로 출판될 전까지)에서에서 현대 심리학적인 접근방법으로 한국 심리학의 마음의 원리를 오늘날 현대적인 적용을 시도했다. 퇴계 이황과 이이의 “사단 칠정”을 7가지의 감정과 4가지의 감정의 본성을 현대적 표현으로 다시 제시하고 영화라는 현대 미디어를 통해 감정 학습에 적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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